About

십수년을 이어오던 기존 블로그 백업을 한순간에 날려먹은 탓에, 지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했다. 일부 내용은 Web Archive에서 가져왔으니 거의 대부분이 삭제된 상태이거나 가져오고 싶지 않은 것들은 제외했다.

이 블로그는 Celestigram 이라는 위상기반 천문물리학의 일종인 인문구조학 관련 서비스를 하기 위한 기술 개발 실험과 개인적인 글로 채워지는 실험 환경이다. 그 서비스를 하기 위해 WordPress를 개발환경으로 삼아 UI Component를 만들어 게시글에 적용하고, 앱같은 사용경험을 만들기 위해 Skin을 수정/테스트 하며 플러그인과 블록을 만들어 적용해보고 있다.

인문구조학적 표현을 빌어 이 블로그의 목적과 정체성을 설명하자면, ⌜Ascendant가 Apex인 Mercury-ASC-Neptune T-Square에 의해 나는 단순한 직감이나 의심이 아니라 표면적인 설명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불일치를 지속적으로 추적하여, 가설과 사실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 때문에 생기는 압력을 해소하기 위한 용도⌟이다. 일반적인 말로 얘기하자면, ⌜드러난 현상과 그것을 설명하는 구조가 일치하지 않을 때, 그 불일치를 쉽게 종결하지 않고 배후 관계를 추적하며, 설명이 충분히 정합적으로 형성되면 기존 작동 방식을 변경하여 현실에서 검증하려는 잠재적 발현 구조를 가졌는데, 설명의 정합성이 실제 증거에 의해 확보되지 못하면, 같은 구조가 과잉 해석과 과잉 변경을 서로 강화하는 방향으로도 발현할 수 있어서 그 상태를 해소하고자 글을 쓴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게시글은 겉으로 보기에 단순 기록이지만 어떤 것에 대한 가능성을 파악하고 실험하는 흐름을 남겨두는 목적이라서 읽는 사람들에게 불친절하다.

시간에 따라 새로운 게시물을 만들기보다 지난 게시물의 내용을 이어가며 업데이트하는 편이다. 이전 내용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거나 삭제할수도 있다. 생각의 흐름이 비 선형적이라서 “정보와 생각의 단위별로 관계를 이어가는듯 유지하다가 최종적으로 하나로 정리해야하는 본인의 구조적 이유 때문에” 어떤 주제에 대해 글 쓰는 도중 문맥없이 널뛸 수 있다.

구글을 제외한 모든 봇/크롤러 접근을 막고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Bot/Crawler가 너무 많이/자주 사이트를 긁어가면 무료 OCI사용을 이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블로그일 가능성이 높다. 블로그 게시물의 URL은 SEO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콤마가 들어가서 이상하게 보이는 URL은 Zettelkästen 노트법에 영감을 받아 만든 KontexusNote 식별자인데, Comma(,)는 분기/전환/반론/연상 등의 다른 흐름을 뜻하고, 이어갈 때는 comma가 없다. 영문자와 숫자가 번갈아 등장한다. 숫자는 영문자가 등장하기까지 하나의 단위이다. 따라서 어떤 게시물들은 제목만 보아도 어떤 관계인지 (굳이) 유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별볼일 없는 WordPress 사이트인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탐색/공격하는 시도가 많아서 정상적인 사용외의 시도를 하면 최소 3시간 차단되며 연속해서 하루에 두번 이상 차단되면 하루동안 차단된다. 계속해서 차단되면 7일, 한달 등으로 이어지게 해두었다. 정상적으로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404 오류나 느리게 열린다면, 뭔가 내가 잘못 설정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Desktop 브라우저 사용자는 메뉴를 보기 위해 마우스 또는 <-/-> 화살표 키를 사용할 수 있다. 그외 화면에서도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왼쪽으로 PAN하거나 Swipe를 하면 사이드바가 열린다.

공개된 Reverse Engineering 툴을 사용하여 얼마든지 누구든지 앱을 재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내가 만든 대부분의 소스는 공개하지 않는다. 기능 구현을 고민하고 발전시키며 학습하던 시대는 지나갔을지 몰라도 이 블로그는 당분간 그런 시대의 향수를 유지할 것이다.


아래 내용은 본인의 특정 구조에 대한 인문구조학적 해석이다. 특정 구조의 생활에서의 발현과 글쓰기, 외국어 학습방법 이라는 주제에 한정된 것임에 주의. 즉, 어떤 주제/시점이냐에 따라 해석은 고정된게 아니다. 본인의 다른 구조에 대한 해석을 추가할 것인데, 인문구조학이 무엇인지 맛보게 하려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 예상되는 생활의 중심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한 결과로 생각의 내용과 판단 기준까지 다시 바꾸는 데 있습니다. 이해와 실행이 서로 떨어진 두 단계가 아니라, 한쪽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다른 쪽을 계속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생각한 뒤 움직이려 하면서도, 막상 손을 대보아야 무엇을 이해했고 무엇을 놓쳤는지가 드러나는 생활이 예상됩니다.

그 출발점은 대단한 사건보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은 어긋남일 수 있습니다. 설명은 친절한데 그대로 따라 하면 중간에서 막히는 안내문,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합의했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에게 부담이 몰리는 일정, 의도는 좋은데 사용할수록 불편해지는 물건 같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설명과 실제 경험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다른 일이 시작되어도 그 어긋남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빠뜨렸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식입니다.

여기서 느끼는 불편은 곧바로 문장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먼저 “이대로는 아닌 것 같은데”라는 반응이 생기고, 나중에 비교와 검토를 거치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가 구체화됩니다. 그 사이에는 불편을 설명하려는 생각과, 아직 설명되지 않은 부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려는 생각이 함께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면 처음의 느낌이 정확해지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중요하게 느꼈다는 이유로 특정 설명을 너무 빨리 받아들일 여지도 있습니다. 감지한 어긋남과 그 어긋남에 붙인 설명이 언제나 같은 정확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흐름은 생각 속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안내문이 불편하면 직접 순서를 바꾸어 써보고, 일정이 어긋나면 배치를 바꿔보며, 말로 설명되지 않으면 실제 사례를 나란히 놓아봅니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표현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순서의 문제였음을 발견하거나, 순서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애초에 서로 다른 목적을 하나의 절차에 밀어 넣은 문제였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행은 이미 내려진 결론을 수행하는 일이면서, 그 결론이 충분했는지를 되묻는 일이 됩니다.

그 때문에 겉으로는 고집스럽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판독에서 두 행동은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은 반드시 현재의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이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입니다. 같은 기준에 도달할 더 나은 길이 드러나면 방법을 크게 바꿀 수 있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이 정도면 됐다”는 말만 주어지면 변경을 멈추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설명이 실제 경험을 더 잘 설명해 준다면, 오래 붙잡았던 방법도 다시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결함을 찾고 고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만들 때에는 뜻과 표현, 형태와 쓰임이 서로 맞아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몰입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글의 한 문장을 바꾸었더니 앞뒤 문단의 관계가 선명해지고, 작은 물건의 배치를 바꾸었더니 사용하는 동작이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완성된 구상을 그대로 실현하는 것보다, 만들어지는 결과가 다음 생각을 불러오면서 처음에는 없었던 형태에 도달하는 방식입니다. “문제를 없앴다”는 만족과 “이제 이것이 왜 이렇게 되어 있어야 하는지 알겠다”는 만족이 함께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작업에서는 사소한 수정이 뜻밖에 큰 재구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눈앞의 불편을 고치려다가 그것을 반복시키는 공통 조건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예외를 처리하는 것으로 충분한지, 같은 문제가 다른 곳에서도 생기도록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잘 풀리는 경우에는 여러 문제를 각각 고치는 대신, 그것들이 발생하던 방식을 한 번 바꾸어 반복 부담을 줄입니다. 반면 어디까지가 실제 원인이고 어디부터가 개선 욕구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처음 맡았던 일보다 훨씬 큰 일을 스스로 떠안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차이는 외부에서 결과를 요구할 때 더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정한 방식으로는 충분해 보였던 것이 다른 사람의 사용, 예상하지 못한 조건, 정해진 기한과 만나면 새로운 불일치가 드러납니다. 이때 단순히 기분이 상하거나 의욕이 꺾이는 것으로 끝나기보다,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가 급하게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이 보이면 움직임이 구체화되지만, 바꿀 권한은 없고 결과에 대한 책임만 남으면 검토와 수정 요구가 계속 쌓이는 장면도 예상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갈림길은, 잘못된 결과를 고치는 일과 그 결과를 만든 자신을 문제로 삼는 일이 얼마나 분리되는가에 있습니다. “이 조건을 빠뜨렸다”면 그 조건을 추가하여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왜 이런 것을 판단하지 못했을까”로 넘어가면 수정 대상이 달라집니다. 결과물의 한 부분을 고쳤는데도 자신의 이해력, 선택의 정당성, 실행 능력에 대한 검토는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칠 곳을 찾아내는 힘이 그대로 자신을 재검토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수정한 결과보다 수정하고도 남아 있는 미심쩍음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아직 충분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열어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오류가 실제로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오류 없이 기준만 계속 높아지는 경우도 구별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정해진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느 순간 어떤 조건에서도 흠잡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드는 일이 목표가 되면, 완료된 작업도 계속 미완성으로 돌아옵니다. 끝내지 못하는 이유가 실행 부족이 아니라, 실행할 때마다 판단의 범위까지 확대되는 데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문제가 구체적으로 좁혀지면 같은 움직임은 다른 결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조건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가 드러나고, 그것을 바꾸었을 때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면, 자신의 판단 전체를 철회하지 않고도 한 부분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때 얻는 것은 단순한 안도감만이 아닙니다. 왜 실패했고 무엇을 바꾸어 해결했는지가 남으므로, 다음 상황에서 사용할 판단 기준도 더 구체적이 됩니다. 행동이 생각을 되돌려 바꾸는 흐름이 자기검토의 확장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으로 마무리되는 장면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대할 때에는 이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결과와 현재 막힌 지점이 분명하면, 문제를 나누고 대안을 찾아 실제로 달라지는지 확인하는 데 집중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함께 판정할 필요가 적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신의 일에서는 결과물을 보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이 같으므로, 한 부분을 수정하는 동안 다른 부분의 정당성까지 의심하게 될 여지가 있습니다. 남의 문제에는 실용적인데 자기 문제에는 지나치게 엄격해 보이는 모습이, 서로 다른 능력 때문이 아니라 같은 검토 능력이 향하는 대상의 차이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도 도움은 말뿐 아니라 구체적인 변경으로 표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대의 어려움을 들으면 어디에서 막히는지 묻고, 바꿀 수 있는 조건을 찾아 함께 움직이려는 식입니다. 상대 역시 해결을 원하고 개입할 범위에 동의한다면, 막연한 격려보다 실제 부담을 덜어주는 도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아직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고 있을 뿐인데 해결책부터 제시하면, 돕는 쪽에서는 관심을 행동으로 옮겼지만 상대에게는 자신의 선택이나 감정이 수정 대상으로 취급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같은 적극성이 협력이 되기도 하고 간섭이 되기도 하는 지점입니다.

대화가 잘 풀릴 때에는 질문과 시도가 서로를 정교하게 만듭니다. 상대의 설명에서 빠진 조건을 발견하고, 실제로 바꾸어 본 결과를 다시 설명에 반영합니다. 반대로 대화가 막히면 같은 말을 되풀이하기보다 더 정확한 답이나 구체적인 결정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음 단계이지만, 상대에게는 동의할 때까지 질문이 끝나지 않는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의도를 상대에게서 읽어내고 그 의도에 대응하기 시작하면, 눈앞의 문제보다 서로가 상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이 움직임이 늘 같은 생각을 강화하는 쪽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관점이 기존의 어긋남을 더 잘 설명해 주면, 그것은 단순한 반박이 아니라 작업 전체를 가볍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이 방법으로 안 되는가”를 계속 묻다가, 애초에 해결하려던 문제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입니다. 이전에는 결함으로 보였던 것이 조건의 차이였음을 알게 되면, 필요 없어진 수정까지 함께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이때 방향 전환은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더 정확해졌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결국 이 구조의 생활 발현은 빠른 사고, 강한 행동력, 예민한 감각 같은 성질을 따로 나열해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느낀 것을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실제 변경으로 이어지고, 그 변경의 결과가 처음의 느낌과 설명을 다시 평가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잘 풀리는 날에는 막연했던 불편이 구체적인 문제로 바뀌고, 그 문제를 고친 경험이 다음 판단을 더 정확하게 만듭니다.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불편이 더 큰 설명을 요구하고, 그 설명이 더 큰 변경을 요구하며, 변경한 뒤에도 끝났다는 판단에 이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판독에서 가장 충실하게 예상할 수 있는 모습은, 끊임없이 자신이나 주변을 고치는 사람이라는 인물상이 아닙니다. 이해한 것과 실제로 살아내는 방식이 서로 맞아야 납득할 수 있고, 둘이 어긋나면 생각만이 아니라 하는 방식도 함께 바꾸려는 생활의 흐름입니다. 그 흐름이 구체적인 문제와 확인 가능한 결과에 닿을 때에는 새로운 방법과 쓸모 있는 결과가 남습니다. 반대로 무엇을 해결하려 했는지가 흐려질 때에는, 충분히 움직이고도 아직 아무것도 끝내지 못한 듯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다이어그램에서 Enter 키 => 최대화/복귀 토글. 마우스 오른쪽 드래그 => 확대/축소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