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life

만날 사람과 통화를 하는데 그 사람이 “내일 오후 6시까지는 바빠서 만날 수가 없어” 라고 말한다면, 그건 내일 오후 6시 이후에는 만날 수 있다는 말이지 만나지 않겠다거나 만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기록된 “천 년이 차기까지는 살지 못한다”는 표현은 “천 년이 차면 살아난다”라는 선언과 같다. 

너무 간단한 비유이고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다들 삶은 한 번 뿐이고 죽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거짓부렁을 너무나도 찰석같이 믿고있어서 그 구절이 거꾸로 얘기하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질 못한다. 아니, 할 수 있는데 안하는게 아니라, 할 수 없도록 그렇게 작성되었다는게 맞다.  그래서, 첫번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모든 사람이 ‘그 시점’ 부터 1000년이 지나면 다 살아나서 두번 째 삶을 살아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 것이다.  ‘그 시점’은 누구나 다 아는 ㅎㄱ 사건이란 건 뭐 숨길 이유가 없다.

사람은 두번 째 삶이 있다는 것을 전혀 기대하지도 못하고 않하는 것이 더 낫다. 그렇지 않다면 첫번째 삶을 개판으로 살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기에, 두번째 삶을 산다는 것이 믿어지면 기억을 밀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쌓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신체조건, 능력조건, 기억을 가지고 두번 째 삶을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첫번 째 삶에서의 불평등과 불만을 이어가는 것과 다를바가 없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번 째 삷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도 알려주면 고맙겠다. 
참고로 나는 내 기억을 밀어버리고 싶은 쪽이다.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