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life

만날 사람과 통화를 하는데 그 사람이 “내일 오후 6시까지는 바빠서 만날 수가 없어” 라고 말한다면,

그건 내일 오후 6시 이후에는 만날 수 있다는 말이지 만나지 않겠다거나 만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기록된 “천 년이 차기까지는 살지 못한다”는 표현은 “천 년이 차면 살아난다”라는 선언과 같다. 

계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The rest of the dead did not come to life until the thousand years were completed. This is the first resurrection.

 

첫째 부활이 있다면 두번째 부활도 있다는게 뭐가 그리 이상한가? 

두번째 죽음이 있으려면 첫번째 죽음이 선행되야 하는 것 처럼 당연한 논리다.

계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Then death and Hades were thrown into the lake of fire. This is the second death, the lake of fire.

 

그러나 너무 뻔뻔하게도 한번 죽으면 끝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세뇌당했기 때문에 

이 간단한 셈법을 마치 이단의 괴수라도 되야 말할 수 있는듯 꺼린다.

 

사람은 두번 째 삶이 있다는 것을 전혀 기대하지도 못하고 않하는 것이 더 낫다. 그렇지 않다면 첫번째 삶을 개판으로 살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기에,

두번째 삶을 산다는 것이 믿어지면 기억을 밀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쌓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신체조건, 능력조건, 기억을 가지고 두번 째 삶을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첫번 째 삶에서의 불평등과 불만을 이어가는 것과 다를바가 없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번 째 삷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도 알려주면 고맙겠다. 
참고로 나는 내 기억을 밀어버리고 싶은 쪽이다.

 

아, 그리고 두번 째 삶도 아기부터 시작하는 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클래식 기타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으니,  가능하면 두번째 삶에선 바이올린부터 시작하고 싶은데… 가능하면 좋겠다.

그림도 포기하지 않을 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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